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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7-02-12 23: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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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에 있어 길이 남을만한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로 유명하지만 밀양의 만세운동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조선총독부 폭탄사건,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투척사건, 밀양경찰서폭탄사건 등을 비롯해 의열단,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로 이어지는 의열투쟁의 주역인 김원봉, 황상규, 윤세주, 최수봉, 고인덕, 김병환, 윤치형, 김상윤, 한봉근, 한봉인, 이병철 열사 등을 배출한 항일 저항정신의 뿌리가 깊은 역사의 고장인 밀양에서는 1919년 3월 13일 기미년독립운동에 이어 영남지방의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이에 사회단체 밀양향토청년회(회장 김종원)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영남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인 3.13 만세운동을 재현행사를 오는 3월 13일 오후 밀양독립만세운동의 진원지인 내일동 사무소 앞에서 3.13 밀양만세운동을 재현해 시민들과 학생들에게 선열의 빛나는 항일 저항정신을 계승하고 자긍심을 고취하고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지점인 밀양상설시장의 역사성을 부각시켜 재래시장이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앞장서고 있다.

밀양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3일 밀양장날(음력 2월 12일)을 맞이해 궐기한 영남최초의 독립만세운동으로 1919년 3월 3일 고종황제의 인산(因山)을 맞이해 수많은 애국지사와 청년들이 고종의 인산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했는데 밀양에서는 윤세주, 윤치형 등이 함께 했으며, 3월1일 파고다공원에서 기미독립운동에 참석한 이들은 독립선언서를 획득해 고향으로 내려와 밀양의 선각자로 동화학교 교장인 전홍표 선생을 찾아가 서울에서의 만세운동 상황을 설명하고 친구, 선․후배들을 규합하여 밀양에서 독립운동을 준비하게 된다.
 
당시 이들은 부북면사무소와 밀양면사무소에서 등사기를 훔쳐 수천 장의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부녀자들은 태극기를 만들어 3월 13일 정오를 기해 수천 명이 운집한 밀양장터에 잠입하여 이를 나누어 준 뒤 1시 30분경 조선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가로 기를 앞세우고 윤세주 열사가 높은 곳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준비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나누어주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군중들은 열광하고 큰 깃발을 따라 거리를 누비며 만세행진이 시작되자 밀양에 주제하고 있던 10여명의 헌병과 경찰병력이 착검한 총을 휘두르며 군중들을 해산시키려 했으나 중과부적으로 막지 못하고, 부산의 헌병수비대 병력의 증파를 요구해 가까스로 진압하게 된다.

하지만 타올랐던 만세의 함성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다음날 밀양공립보통학교 학생 160여명이 교사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군경의 무자비한 총칼에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고 재판에 회부됏다.

밀양의 독립만세운동은 영남에서 최초로 일어난 만세운동으로 지금까지 최초의 기록이라고 알려진 창녕의 영산 만세운동과 같은 시기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로인해 옥고를 치르고 중국으로 망명한 밀양출신 청년들의 불같은 애국심은 우리나라 독립투쟁사를 통해 의열투쟁으로 이어진 역사적인 자취를 남긴 중요한 사건이 됐다.

오는 3월 13일 오후에 현 밀양시 내일동사무소 앞에서 재현되는 3.13독립만세운동에서는 식전행사, 추모기념식이 거행되고, 만세운동 재현과 시가행진 등이 기획되고 있으며, 밀양향토청년회에서는 전 시민의 공감대 형성과 애국지사의 얼을 계승 할 수 있도록 당일에 적극적인 동참과 태극기 달기운동에 앞장 서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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