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슬프다. 이 보물보다도 더 중요한 민족의 혼이 스며있는 이 임청각(臨淸閣)의 건물을 일본 놈은 다 훼손하고 철길을 만들었으니 이 일을 아는 이 그 누군가 슬프고 슬프도다.
이 건물이 보물보다 더 중요하다면 반드시 그 주변의 나무도 같이 얼이 살아 있을 것인데 이러한 민족의 정기와 얼이 스며있는 것도 모르고 신목이라는 이 나무를 베어버렸으니...
아 슬프다. 즉 자기머리를 자르는 것이며 즉 자기 부모의 머리를 자르는 짓이니 아 슬프다. 이 나무는 즉 정기가 스며있는 이 신목은 댐의 입구에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길안내와 안녕과 그리고 석주 이상룡 선생님의 나라를 되찾기 위해 힘쓰신 얼이 스며있는데...
아 이 나무를 베었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아 슬프다. 이 임청각(臨淸閣)의 임(臨)자의 뜻은 즉 부모가 자식에게 무한히 베푼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러한 뜻이 있는 임(臨)자가 있는 임청각(臨淸閣)을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님께서 이 현판(懸板)을 손수 직접 친필로 쓰셨습니다.
과연 이러한 뜻을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이 나무에 민족의 혼과 얼이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가 가르쳐만 주었다면 과연 그 사람이 이 나무를 벨 수가 있었을까 왜놈이면 이 나무를 벨 수가 있겠지만 안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그 임청각(臨淸閣)의 깊은 뜻을 아는 사람이라면 과연 이 나무를 벨 수가 있었을까
아 슬프다. 석주 이상룡선생님께서 우리의 훌륭한 단군조선사인 상고사의 역사를 찾기 위해 그리고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무한히 애쓰셨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역사가 귀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알았다면 이 신목이라는 이 나무를 베지도 않았을 것이며. 나라도 빼앗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義士)나 윤봉길 의사(義士)와 같은 훌륭한 분들의 목숨을 잃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아 슬프다. 우리고장의 훌륭한 분들의 그 깊은 뜻을 모르고 있으니 우리 고장 안동은 임청각(臨淸閣)에서 임(臨)자가 말하는 것을 보더라도 나무 하나라도 사랑하며 보살펴주는 고장이다. 하물며 사람은 더 사랑하며 보살펴주는 고장이다. 이러한 뜻을 길이길이 빛내기 위해서도 그 신목을 위하여서도 즉 안동의 얼을 되살리기 위해서도 신목보다 더 좋은 나무를 살려놓아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조상의 숭고한 얼을 되살릴 수 있다고 보며, 우리고장의 훌륭한 분들을 볼 면목이 있다고 보며. 시람의 도리를 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나아가 이것이 바로 내 고장을 사랑하는 길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 고장을 빛내는 것이며, 우리의 안동의 얼을 빛내는 길일 것입니다. 안동의 정신문화를 빛내는 길일 것입니다. 나아가 나라의 정신문화에 앞장서는 길일 것입니다.
♠ 임청각: 보물 182호
▣ 臨淸閣(임청각) * 위치(位置): 안동시 법흥동(安東市 法興洞) 20 * 당호의 유래 - 고성이씨(固城李氏)로 안동에 처음으로 정착한 이는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용헌(容軒) 이원(李原)공의 여섯 째 아들인 이증(李增)공이다. - 1555년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여 등극하자 의분(義憤) 지사(志士)는 모두 관작을 버리고 낙향(落鄕)하여 임천(林泉)에 은둔(隱遁)하는 풍조가 많았는데, 공(公)도 이때 영산현감(靈山縣監)의 현직을 버리고 산수가 아름다운 안동에 이거(移居)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 임청각(臨淸閣)은 중종 때 형조좌랑을 지낸 이증공의 아들 명(洺)이 벼슬에서 물러나 지은 건물이며, - 이곳은 임시정부(臨時政府) 초대 국무령(國務領)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의 생가(生家)이자 고성이씨 법흥종택(法興宗宅)이기도 하다. - 당호인 임청각(臨淸閣)은 중국 송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구절 중 登東皐以舒嘯(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불고 臨淸流而賦詩(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기도 하노라 라는 시구(詩句)에서 임(臨)자와 청(淸)자를 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