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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8-10-28 23: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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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지사 김관용)는 최근 문화재위원회를 개최하여「안동 봉황사 삼세불화」,「문경 대승사 노주석」,「문경 대승사 묘 적암 나옹화상 영정」등 3건을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로, 「안동 봉황사 오방제위도 및 사직사자도」,「구미 남화사 석조 여래좌상」,「문경 대승사 명부전 지장탱화」,「성주 도형 정 려각」등 4건을 문화재자료(文化財資料)로 지정하기로 했다.
 
이번에 7건의 문화재 지정으로 경상북도의 지정문화재는 총 1,764점(국가지정 581, 도지정문화재 650, 문화재자료 533)이 되었다.

아울러,「포항 대성사 소장 금동여래좌상」,「포항 덕동 여주 이씨 농재파 소장 고문서」,「포항 경주이씨 익재공파 석동 문중 소장 판목」,「포항 김해김씨 유수공파 소동문중 소장 판목」등 4건을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 및 문화재자료(文化 財資料) 지정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이번에 문화재적인 가치가 인정된 문화유산은 지정예고절차를 거쳐 차기 문화재위원회 에서 지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에 도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로 지정이 확정된 7건에 대한 지정사유는 다음과 같다.

안동 봉황사 삼세불화(安東 鳳凰寺 三世佛畵) 이 3폭의 불화는 봉황사 대웅전에 안치되었던 세로 380~ 390㎝, 가로 240~280㎝의 거대한 후불탱화로, 현재 안동 시립민속박물관에 위탁 보관되어 있다.
 
삼세불화(三世佛畵)는 석가불화인 영산회상도를 중심으로 좌 우에 약사회상도, 아미타극락회상도가 봉안되며, 석가불은 현재, 약사불은 과거, 아미타불은 미래를 의미한다. 이 불화는 심하게 훼손된 듯하나 각 상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남아있어 보존처리를 통해 상당부분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약사회상도의 화기(畵記)에 의해, 1725년에 조성되었음을 명확히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목구비 등의 특징적 세부묘사, 개성이 넘치는 형태,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채색 등 조선시대 삼세불화 연구에 기준작이 되는 귀중한 자료라고 판단되므로 有形文化財로 지정한다.

문경 대승사 노주석(聞慶 大乘寺 露柱石) 대승사 대웅전 앞에 나란히 놓인 2기의 노주석은 사찰에서 야 간에 법회 등의 행사 때 주위를 밝히는 석등의 일종이다. 석등 보다 선행되는 형식이지만, 고려시대 이전으로 올라가는 노주 석은 아직까지 알려진 것이 없으며, 다만 조선시대의 몇몇 예가 영남지역에 남아 있을 뿐이다.
 
형태는 사각형 지대석을 놓은 뒤, 사각기둥을 한가운데 세우고 그 위에 받침이 있는 화반(花盤)을 올려놓았다.

오랜 세월 사용 되면서 화반 일부가 금이 간 부분이 있으나 비교적 완형을 유지 하고 있으며, 형태가 질박하여 조선시대 불교미술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간주(竿柱)에 새겨진 명문(銘文)을 통해 1729년이라는 제작연대와 공인(工人)의 이름을 알 수 있어 불교공예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판단되므로 有形文 化財로 지정한다.

문경 대승사 묘적암 나옹화상 영정(聞慶 大乘寺 妙寂庵 懶翁和尙 影幀) 이 불화의 주인공인 나옹화상(1320~1376)은 고려 말의 고승 으로 보우(普愚)와 함께 조선시대 불교의 초석을 놓은 위대한 고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묘적암은 그가 21세 때 출가하여 수행한 사찰이며, 조선 후기까지 불교의 성지로 부각되었다.

대승사 묘적암에 모셔진 이 나옹화상 영정은 화기(畵記)를 통해 1803년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화면에는 가사 장삼을 입은 나옹화상이 주장자를 들고 염주를 잡은 채 측면 향으로 가부좌하고 있다. 고승 뒤로 용(龍) 장식이 화려한 불자(拂子)가 세워져 있으며, 바닥과 벽면이 구분되어 있다. 화면 왼쪽 위 에는 주인공의 존호를 밝힌 영제(影題)가 적혀있고 맨 아래에 제작연대와 제작자를 밝힌 화기(畵記)가 있다.

왼쪽 어깨의 커다란 가사고리가 금(金)으로 장식되어 있는 등 비교적 많은 양의 金을 사용하고 있다. 이 불화는 제작연대를 알 수 있어 나옹화상 영정 연구에 기준작이 되는 중요한 자료라고 판단되 므로 有形文化財로 지정한다.

안동 봉황사 오방제위도 및 사직사자도(安東 鳳凰寺 五方 帝位圖 및 四直使者圖) 이 불화는 봉황사에 보관되어 있는 오방제위도(3폭)와 사직사 자도(4폭)이다.

오방제위도는 중국의 전설상의 제왕(帝王)인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동방의 태호 복희씨(太昊 伏羲氏), 서 방의 소호 금천씨(少昊 金天氏), 남방의 염제 신농씨(炎帝 神 農氏), 북방의 전욱 고양씨(顓頊 高陽氏), 중방의 황제 헌원씨 (黃帝 軒轅氏) 등 다섯 황제를 그린 것으로, 원래 5폭이었다고 추정되지만 현재 봉황사에는 3폭만 남아 있다. 옷 색깔 등 부 분적으로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머리에 일월관을 쓰고 두 손은 가슴 앞으로 모아 홀을 받들고 용두로 장식된 화려한 의자에 정면을 향해 앉아 있다.

사직사자는 연직사자(年直使者), 월직사자(月直使者), 일직사자(日直使者), 시직사자(時直使者)로 염라대왕 등이 망자의 집에 파견하는 저승사자를 일컬으며, 보통 창이나 두루마리 등을 들고 말과 함께 서 있는 전령의 모습이다.

이 7폭의 불화는 도량장엄 또는 의식용으로 사용되었던 불화 로서, 인물묘사, 채색, 필선, 장식 등으로 볼 때 18세기에 제작된 희귀한 자료이므로 文化財資料로 지정한다.

구미 남화사 석조약사여래좌상(龜尾 南華寺 石造藥師如來坐像) 이 불상은 과거에 예천 복천사지(福泉寺址)에서 수습되었다고 전하는 석조약사여래좌상이다. 오른손은 촉지인(觸地印)을 맺고 왼손에는 약호(藥壺)를 얹었으며, 오른발을 위로 하여 결가부좌 (結跏趺坐)하고 있다. 불상의 머리 부분은 몸통에 비해 큰 편 이며 이목구비는 정연하게 다듬었다. 광배(光背)와 불신(佛 身)을 하나의 석재로 조성하였으며, 대좌(臺座)는 조성 당시의 부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상호(相好)의 보수, 옷주름의 마멸 등 아쉬운 점은 있지만, 불상의 수인(手印)과 옷주름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후반 불상의 특징을 지닌 등신대의 약사여래상으로 지방 조각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으므로 文化財資料로 지정한다.

문경 대승사 명부전 지장탱화(聞慶 大乘寺 冥府殿 地藏幀畵) 1876년에 제작된 이 지장탱화는 원래 무량수전에 안치되었던 불화로서, 현재는 명부전에 모셔져 있다. 화면에는 지장보살 좌상을 중심으로 지옥의 시왕과 그 권속이 함께 그려져 있다.

중앙의 지장보살삼존 좌우로 왼쪽에는 홀수의 시왕과 판관, 사자, 옥졸 등을, 오른쪽에는 짝수의 시왕과 판관, 사자, 옥졸 등을 배치한 형태이다. 여기에 화면 상단의 지장보살 주위로 6보살이 좌우 대칭으로 첨가되어 있다. 문양의 생략, 음영이 심한 옷주름 표현, 적색․녹색․청색․황색․흰색 등의 두드 러진 채색 등에서 19세기 말경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으므로 文化財資料로 지정한다.

성주 도형 정려각(星州 都衡 旌閭閣) 이 정려각은 도형(都衡)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이다.

그는 조선 중기 학자이자 문신으로서 기성 정치세력인 훈구파에 대항하여 개혁정치를 주도했던 영남사림파의 일원으로서 그 역사적 위상이 뚜렷하다. 이에 선생의 충절을 기리고자 지역 유림들의 상언(上言)으로 1818년(순조 18)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창건되었다. 또한 정려각 규모가 경북도 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에 속하고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설치하는 등 건축적인 특징에서도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인정되 므로 文化財資料로 지정한다.

경상북도는 전국 最高․最多의 문화재를 보유한 광역자치단체 로서 해마다 문화재 보존․관리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문화유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 모색해 나갈 방침이다. 아울러, 문화재청과의 협의를 통해 도지정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시키는데 지 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예산절감과 지역 문화재의 위상을 제고 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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