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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별과(陶山別科), 역사와 스토리텔링의 옷입고 재현 - 도산별과, 선현을 기리고 기량을 겨루다
  • 기사등록 2013-04-30 16: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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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년 전 정조임금의 특명에 의해 실시된 도산별과(陶山別科)가 재현된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오는 5월 4일 안동 도산면 도산서원 앞마당에서 220년 전 정조임금의 특명에 의해 실시된 도산별과를 재현한다고 밝혔다.

별과란 초시(初試), 회시(會試), 전시(殿試)로 구성돼있는 과거시험에서 초시와 회시를 통합한 것으로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선비들에게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도산별과는 통합과 화합을 상징하는 대표적 아이콘으로 당시 정조임금은 노론, 소론, 남인을 고루 등용하는 탕평정치를 실시했는데, 그런 관심의 일환으로 영남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조선유학의 거장인 퇴계이황의 얼이 깃들어있는 도산서원에서 별과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1만여명의 유생이 도산서원에서 특별과거시험을 치르다.
1792년 음력 3월 25일, 정조임금은 규장각의 관원이었던 각신(閣臣) 이만수(李晩秀)(1752~1820)를 도산서원에 파견해 몸소 지은 제문(祭文)으로 제사를 올리게 한 다음 제사에 참여하는 유생들을 대상으로 별과(別科) 이른바 특별과거시험을 행하도록 했다.

당초 서원 강당인 전교당의 앞뜰에서 시험을 치를 계획이었지만, 만여명에 이르는 유생들이 모여드는 바람에 서원 앞에 자리한 소나무 숲으로 시험장소를 변경했다.

이날 시험을 치렀던 유생은 7,228명으로 최종 제출된 답안지는 3,632장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도산서원에 모인 사람은 1만명이 넘었다. 경상 좌도와 우도를 가리지 않고, 또 나이가 많아 과거를 포기한 사람들까지도 도산서원으로 몰려들었기 때문. 이만수는 시험이 끝난 후 제출된 답안지를 밀봉해 규장각으로 보냈고 이를 전해 받은 정조임금은 직접 채점한 뒤 1등과 2등에게 과거의 마지막 단계인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는데 청지(淸之) 강세백(姜世白)(1748~1824)과 고식헌(故寔軒) 김희락(金熙洛)(1761~1803)이 그 영예를 누리게 됐다.

도산별과, 역사와 스토리텔링의 옷을 입고 재현되다.
행사가 열리는 5월 4일은 음력 3월 25일로, 도산별과가 행해졌던 날이다. 당시 1만여명의 유생들이 모였던 소나무 숲은 안동댐 건설로 수몰됐지만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시사단(試士壇)을 배경으로 행사가 열린다.

행사는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이 퇴계선생의 위패가 있는 상덕사에서 고유제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임금이 직접 제출한 시험문제를 전달하기 위해 취타대를 앞세운 파발행렬이 재현된 후 권영세 안동시장이 어제통(御題筒)을 건네받아 시험문제를 기둥에 내걸면서 시작을 알리는 북이 울린다.

과거시험에는 전국의 내노라하는 한시(漢詩) 전문가 20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도포와 유건 차림의 참가자들이 도산서원 앞마당에 마련된 돗자리에 줄을 지어 앉아 약 3시간에 걸쳐 시험을 치른다. 수거된 답안지는 전교당으로 전달돼 시관(試官)들이 채점을 하고, 성적이 적힌 과방(科榜)을 붙인 다음 시상한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역사적 사실을 그려내는 것인 만큼 오류가 없도록 최대한 문헌자료에 근거해 이번 행사를 재현했다”면서 “관람객들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 시대에 걸 맞는 스토리텔링을 덧붙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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