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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관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전' 열려 - 남관 화백은 1958년 한국인 화가로는 처음으로 살롱 드메전에 초대되어 국제…
  • 기사등록 2011-11-15 00: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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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관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지난 11일 서울 부암동 환기미술관에서 한동수 청송군수를 비롯해 국내 유명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국립현대미술관 및 청담갤러리, 대백선교문화재단 등의 소장품 200여점이 전시된 이번 전시회는 전쟁의 고통과 재건의 시대를 불굴의 의지로 달리며 후학을 양성하고 창작 활동에 박차를 가한 시대와 예술의 표상인 남관 화백의 예술 생애를 돌아보는 가운데 남관 화백의 50년 화업 정리와 함께 그가 남긴 수준 높은 예술론과 추억담을 엮은 화집 '念·像·幻想' 출판을 기념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1911년 11월 25일 청송군 부남면 구천리에서 태어난 남관 화백은 부남보통학교와 청송보통공립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4세가 되던 해 일본으로 건너가 작가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광복 후 귀국하여 청송에서 3년간 머물며 창작활동을 하면서 대구, 서울 등지를 오가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여 부산 피난을 가게 되었고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백영수를 비롯한 50여명으로 구성된 종군화가단에서 선두격으로 활동했다.

전쟁이 끝난 후 1954년 프랑스로 건너가 추상미술에 몰입한 남관 화백은 1958년 한국인 화가로는 처음으로 살롱 드메전(展)에 초대되는 등 국제적인 화가로 인정 받기 시작했으며 1966년 망뚱 비엔날레에서 피카소, 뷔페, 타피에스 등을 물리치고 대상을 수상하여 확고한 작가적 위치를 다졌다.

세계적 평론가 가스통 디일로부터 '동·서양 문화의 어느 일부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둘을 융합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대예술가'라는 찬사와 더불어 '동양의 정신을 서양의 기법으로 표현한 최고의 대화가'라는 극찬을 듣던 남관화백은 인간의 희로애락, 생명의 영원성 등을 정제되고 세련된 색채에 담아, 인간상을 마치 상형문자와 같은 형상으로 표현한 추상미술의 선각자였다.

이후 홍익대학 교수등을 역임하면서 국내활동과 더불어 파리를 중심으로 한 작품 활동을 계속한 남관화백은 서독·스위스 등 세계 각지에서 초대전을 개최하였으며 대한민국 국전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제17회 국전 서양화분과 심사위원장을 맡았을 때 입상작 선정 투표가 사전 담합에 의한 돌려먹기식이 되자 심사 도중 심사위원장직을 사퇴하여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당시의 사건은 남관 화백의 예술가적인 고집과 선비적인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983년 제28회 예술원상 후보에 올랐지만 화가의 자존심을 내세워 서류 제출마저 거부하였던 남관화백에게 대한민국 예술원은 작고 작가에게 수상하지 않는 관례를 깨뜨리고 1990년 예술원상을 그에게 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작가적 고집과 자존심으로 평생을 예술 창작에만 전념하던 남관화백은 당시 구태의연한 화단의 풍토에 맞서 수많은 갈등을 빚기도 했으며 자신의 그림이 전시된 일본 동경아트엑스포가 개최되던 1990년 3월30일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했다.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한 남관 화백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센터, 파리시립미술관, 룩셈부르크국립미술관, 토리노국제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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