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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7-02-09 19: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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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과 서쪽 끝에 각각 자리 잡고 있는 한국과 스페인은 거리만큼이나 서로에게 낯선 존재이다. 그러나 극과 극은 만난다고 했던가? 따지고 보면 스페인만큼 한국과 유사한 역사를 가진 나라도 찾아보기 드물다. 두 나라는 상이한 문명의 교차 지역에 위치하여 수많은 외적의 침략을 받은 반도국가라는 점과 근대화의 물결에서 뒤쳐져 역사의 주변부로 밀려난 후 동족상잔의 비극과 기나긴 독재의 체험을 했다는 점 등을 공유한다. 그러나 스페인은 세계 8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옛 면모를 되찾고 있고, 한국은 세계 12위의 경제력과 과학기술로 새롭게 무장한 신흥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선진 경제를 발판삼아 21세기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려 하는 두 나라의 정상들이 이번에 만난다. 거시적으로 볼 때 이번 만남은 미래의 태평양 시대 주역과 전통적인 대서양 강국의 조우이며, 유·불·선을 통합해 낸 동양의 지혜와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가 조화롭게 융합된 서양 정신의 만남이다.

스페인에 대한 인상을 물을 때 한국인들은 흔히 ‘정열’, ‘시에스타’, ‘투우’, ‘플라멩코’ 등을 떠올리곤 한다. 확실히 스페인은 연중 3백일 넘게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과 8000km가 넘는 하얀 백사장을 밑천으로 가지고 있는 관광대국임이 틀림없다. 해마다 자국 인구보다 많은 5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관광수입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관광은 국가경제를 견인하는 대표적인 기간산업이 되고 있다.


G8 스페인, 항공·금융 등 세계적 경쟁력

그러나 스페인에는 관광 이상의 것이 있다. 스페인은 세계 6위의 자동차 생산국(2003년)이고 세계 6위의 대외 자본 투자국이며 세계 경제의 G8이라는 자부심이 충만하다. 스페인은 항공, 우주산업 등의 첨단 분야와 금융, 전력, 통신 등의 기간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비슷한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는 한국과 스페인은 상호보완적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많은 분야에서 실질적인 경제협력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과의 만남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의 자부심의 원천인 문화적 저력이다. 세계적 경제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는 결코 GDP의 좁은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다. 세르반테스와 고야, 피카소와 가우디를 배출한 나라답게 예술은 스페인의 삶에서 빠져서는 안 될 양식과도 같다. 보통의 스페인 시민이 플라시도 도밍고의 음악과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에 대해 카페에 앉아 몇 시간이고 얘기하는 것은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아무리 백만장자라 하더라도 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스페인 사람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자부심의 원천은 문화적 저력

스페인은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적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우선 스페인은 4억 8천만 명이 사용하는 스페인어의 종주국이다. 현재 세계 3대 언어인 스페인어는 갈수록 사용인구가 급증하고 있고, 특히 미국에서는 흑인 인구를 추월한 히스패닉의 영향력 증가로 영어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을 정도이다. 현재 미국 대학생의 70% 이상이 제1외국어로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으며 이 추세대로라면 21세기 중반에 이르러 미국은 영어와 스페인어의 2개 공용어 국가로 변모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한편 스페인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의 대중남미 투자국이며 포르투갈과 브라질을 포함하는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담’을 주도하고 있다. 영연방(英聯邦)보다 훨씬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는 일종의 ‘서연방(西聯邦)’의 종주국으로서 스페인은 한국에 우호적인 국제 여론을 형성하고, 특히 미래의 유망 시장인 중남미에 한국이 진출하는데 최고의 조력자가 될 수 있다.


아시아와 관계 강화…한국을 주요 협력국 선정

때마침 스페인은 2000년부터 '플랜 아시아(Plan Asia) 4개년 계획'을 세우고 대아시아 관계 강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한국을 주요 협력국의 하나로 선정했다. 이에 발맞추어 의원친선협회가 결성되고 서울에 세르반테스 문화원 개설이 추진되는 등 정부, 기업 및 민간 차원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 및 스페인어권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를 위해 제일 시급한 것은 인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다.

일찍이 스페인어의 중요성을 인식한 일본의 경우 140여개 대학에 스페인어 전임 교수가 있어서 6만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으며, 19세기말부터 시작된 중남미 이민의 결과 일본계 대통령 및 상당수의 장관 및 국회의원들을 배출하고 있다.

단지 14개 대학에 스페인어 관련학과가 개설되어 있는 한국에서도 스페인어 및 문화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어 해외진출을 통한 국익창출의 인프라 구축이 되고 진정한 세계화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다면 그것만으로도 대통령의 스페인 순방은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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