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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7-03-06 13: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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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위치한 서울경찰청 3층 다기능 현장증거분석실 입구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30평 남짓한 분석실에는 2억 원을 들여 새로 도입한 13개의 장비를 포함해 22가지의 첨단 장비와 시약을 저장하고 있는 냉장고가 놓여 있다.

다기능 현장 증거분석실은 검시와 화재감식, 범죄분석(Profiling)을 통해 확보한 증거물의 기초분석과 감정분류 및 기법연구, 범죄정보 통합관리를 위한 실험실이다.

과학수사요원 정원찬 경사와 이재선 경장이 분석실에서 약품을 이용해 지문과 혈흔을 채취하고 있었다. 분석실 바닥에 형광가루를 뿌린 뒤 휴대용 가변광원 장비로 가시광선을 비추자 발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또 유리에 비추자 지문이 보였다.
 
수사를 위한 증거분석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범인이 남긴 흔적을 잘 찾기 위한 연구 중이란다. 사건현장에 존재하는 혈흔과 지문 등을 꼼꼼히 따져 범죄를 재구성하는 작업은 웬만한 연구와 실습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 경사는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하면서 범인은 더 이상 현장에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현장에서 사소한 흔적을 찾아 범인을 밝혀내는 것이 과학수사 요원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혈흔 등 국과수 도움없이 독자 감식…과학수사에 새 장

피해자 옷에 묻은 보풀(섬유질)과 눈곱만 한 핏방울(혈흔), 바닥에 떨어진 흙 한 톨(미세먼지)을 수거해 용의자의 폭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범죄현장에서 용의자의 혈흔이 발견됐다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은 DNA 분석을 통해 정확한 한 사람을 밝혀주지만 현장증거 분석실은 우선 혈액형이라도 검사하는 방식으로 용의자의 폭을 4분의1로 줄일 수 있도록 해준다.

과학수사계 현장감식 3팀 정교래 반장은 “용의자 100명을 25명으로 압축하는 작업은 국과수의 과중한 업무를 보완하는 한편 수사 효율성을 높이고 인권침해의 소지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수사 요원들은 범죄현장에서 결정적 단서를 찾아낼 때 쾌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작은 흔적 하나하나가 사건해결에 중요한 열쇠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발생한 술집 여주인 살해사건은 하마터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은 사건으로 남을 뻔했다. 지문을 채취할 수 없었다. 범인들이 먹다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포도씨와 껍질, 그리고 발자국이 전부다. 경찰은 포도씨와 껍질이 부패되지 않도록 ‘증거물 건조기’로 말린 뒤 국과수에 보내 DNA 분석을 의뢰했고 보름 뒤 신원을 알 수 없는 2명의 남자라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그러던 중 11월 중순께 범행수법이 비슷한 사건이 충남 천안에서 발생했다. 40대 여성을 살해하고 금품을 털어간 사건이다. 천안경찰서는 범인들이 사건 당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 지역에서 성인 채팅 전화와 PC로 인터넷에 접속한 사실을 확인하고 휴대전화 실시간 위치추적을 한 결과 11월 27일 김모(34)씨와 민모(34)씨를 붙잡을 수 있었다.

지문감식 등 국내 과학수사 선진국에서도 인정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요원들은 이틀 뒤 아침 컴퓨터에 올라와 있는 천안 사건의 범인 검거 보고서를 보고 노원구 주점 살인사건을 떠올렸다. 수사팀은 천안서에 피의자 유전자에 대한 감정을 국과수에 의뢰해 포도씨에서 추출한 DNA와 동일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1월 8일 새벽 부산 부산진구 범천 2동 한 식당에서 주인 조모(64·여)씨가 목이 졸려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과학수사 요원들은 숨진 조씨의 목에서 맨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나무 부스러기를 광학 현미경으로 찾아내 범인을 검거하는 쾌거를 올렸다.

정교래 반장은 “현장은 분명히 범인이 누군가를 말해주고 있다”며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우리는 항상 사건현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 과학수사 여건이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문감식 기술은 선진국에서도 인정할 정도”라며 “국내에서도 전문가들이 늘어나는 만큼 미국 CSI를 따라잡을 날도 머지않았다”고 강조했다.

과학수사에 25년간 몸을 담아온 김상현 경위는 “작업공간과 실험실이 없어서 대부분의 증거물을 국과수에 전량 위탁 감정해 왔기 때문에 국과수는 업무 폭증으로 감정기일이 지연되고 경찰도 수사에 속도가 나지 않는 문제점이 있었다”며 “하지만 다기능 현장 증거분석실이 생겨서 신속하고 정확한 감식으로 범죄의 조기해결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다기능 현장증거분석실은 올 상반기까지 부산, 인천, 강원, 전북, 경남 경찰청 등 5곳에, 다른 지방청은 2008년까지 설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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