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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의병장 류명국 출신지는 진주 아닌 하동’
  • 경남편집국
  • 등록 2013-03-12 1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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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문화원 향토사연구위, 류명국 의병장 종손부 양필문 씨 ‘옥종’ 주장
 
지리산을 중심으로 400여명의 의병진을 거느리고 일제와 맞서 싸웠던 경남지역의 대표적 항일의병장 류명국(柳明國·진환 1869~1937)의 출신지가 진주가 아닌 하동군 옥종면이라는 주장이 그의 종손부에 의해 제기됐다.

유명국(진환) 의병장의 종손부 양필문(89․하동 진교면 고이리) 씨는 지난 8일 하동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회(위원장 정재상)를 찾아 “시할아버지 류명국(진환) 의병장의 출신지는 하동군 옥종면이다”며 “옥종면 안계에서 태어나 진교면 송원에서 성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부 기록에 진주시 수곡면으로 돼 있으나 이는 잘못된 기록이다. 따라서 향토사연구위원회에서 바로 잡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정재상 위원장이 전했다.

양 할머니는 이같은 주장에 대해 “나는 종손부로서 시어른으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것”이라며 “시할어버지 이후 4대째 하동진교에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류명국 의병장의 출신지와 관련해 정재상 위원장(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류명국은 하동군사에도 기록돼 있는 경남을 대표하는 항일 의병장이다. 그의 항일기록이나 후손들의 증언과 그의 아들 제적등본 등을 살펴보면 본적이 하동으로 돼 있다”며 “이는 하동출신으로 충분히 볼 수 있다”고 밝혔다.

1994년 류명국 의병장의 자료를 찾아 국가보훈처에 서훈을 신청했던 진주지역 향토사학자 추경화(독립운동연구가) 씨는 “류명국 의병장은 마산보훈지청에서 발행한 공훈록에 하동군 옥종면 안계출신으로 기록돼 있다”며 “일제치하에서는 일본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여러 곳으로 이주해 살았다”고 했다.

그는 또 “일부 기록에는 진주시 수곡면 또는 산청군 덕산 출신으로 기록돼 있으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하동 출신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고 밝혔다.

양 할머니의 이같은 주장 뒤에는 “내 나이 89세라 이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잘못돼 있는 기록 하나라도 바로잡고 시할아버지가 태어난 곳에 작은 비석 하나 세우고 눈을 감는 게 평생소원”이라고 했다.

한편. 국가보훈처가 발행한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의하면 ‘류명국 의병장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분을 참지 못하고 하동, 진주, 산청, 함양, 사천 등지에서 격문을 붙이고 의병 400여명을 모아 지리산을 점령하고 항일투쟁을 벌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장석현, 이만용, 이상수, 조덕삼, 황의중, 추교문, 장우만, 이학노, 이사언 등과 의병조직을 편성하고 1907년부터 1908년 8월까지 지리산을 무대로 일본군과 50여 차례 격전을 벌여 일본군 수십여 명을 사살했다.

그러던 중 1908년 8월 30일 산청군 덕산골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격렬한 전투 끝에 부하 16명이 전사하고 그는 생포됐다.

이후 류명국은 진주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던 중 한일합방이 되면서 특별 사면돼 2년 만에 석방됐다.

그는 옥고를 치르면서 얻은 병으로 평생을 고생하다가 1937년 69세에 파란만장한 생을 마쳤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으며, 그의 묘는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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