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국창 유성준 선생 추모비’ 제막 행사 열어
  • 경남편집국
  • 등록 2010-05-04 02:56:01
기사수정
  • 유성준 명창의 적벽가와 월북한 서편제의 거장 박동실 선생의 초한가 등 공개
경남 하동군 악양면 출신으로 근대 판소리 5대 명창중의 한 사람인 유성준(劉成俊·1873~1949) 명창의 추모비 제막 행사가 지난 3일 오전에 거행됐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대한민국 판소리 동편제 명창 기념 사업회(회장 유한호)는 선생이 잠들어 있는 악양면 중대리 905-1번지 현지에서 유족과 전국 국악인 및 지역주민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날 제막식에는 정재상 사무국장(향토사학자)의 사회로 경과보고가 있은 후 유한호 회장(국악인)의 제막식사, 비 제막, 헌화 그리고 정연가 하동문화원장이 지은 비문을 기념사업회 이명숙 부회장(국악인)이 낭송했다.

이어 기념사업회 전인삼 자문위원(전남대학교 국악과 교수)의 추념사와 여상규 고문(국회의원)의 격려사 그리고 유족대표 변기효씨(유성준 명창의 외 증손자)의 인사말이 있었다.

또한 1934년 제작된 유성준 명창의 판소리<적벽가> 중 조자룡 활 쏘는데 대목과 선생의 제자인 임방울의<수궁가>, 김정문의<춘향가>와 한국 전쟁 당시 월북한 서편제의 거장 박동실의<초한가>등 17곡을 공개했다.

이에 앞서 식전행사로 유성준 명창을 위한 날받이 씻김굿을 채수정 박사(판소리 1호 박사,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석·박사)의 의식으로 초가망석, 제석굿, 길닦음, 종천멕이 순으로 40분간 진행됐다.

이번 제막식 행사와 관련해 정재상 사무국장은 “그동안 국창 유성준 선생의 묘소가 방치 되다 시피 해 흔적 조자 찾기가 쉽지 않았으나 기념사업회 구태수 자문위원의 노력과 하동군의 도움으로 묘소를 새롭게 단장하고 추모비를 세윘다”고 밝혔다. 정국장은 이어 “판소리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인 만큼 너무도 값진 것이라며 판소리 명창에 대한 예우도 남달라야 한다”고 덧 붙였다.

한편 유성준 선생은 근대 판소리 5대 명창중의 한 사람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동편제의 거장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선생은 하동군 악양면에서 태어나 13세 때 부친을 따라 구례로 이주해 명창 송우룡 선생 등으로부터 소리를 배워 명성을 얻자 서울로 진출하여 장안을 누비며 소리가락으로 이름을 날렸다.

1902년 선생의 나이 29세 때 참봉벼슬을 받아 국창에 올라 궁중협률사(왕실극장)와 김창환(1854~1927·전남 나주, 서편제의 거장 5대 명창중의 한사람) 민간협률사의 대표적 인물로 활동했다.

선생의 특기인 <수궁가>와<적벽가>를 부를 때면 관객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 들었고, 이후 판소리를 민중 예술의 장르로 승화시킨 선생의 소리에 고종황제와 대원군도 크게 감동했다고 당시 기록은 전한다.

선생은 나라가 일제 지배를 받자 잠시 활동을 접고 후진 양성에 정열을 쏟았다. 그리고 1929년 하동으로 가족과 함께 돌아 왔다. 선생은 1928년과 1934년 오케에서 발매한 3종의 유성기 음반 녹음에 참여해 귀명창(판소리 애호가)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선생은 악양, 진주, 경주, 순천 등지에서 활약 임방울, 강도근, 박동진, 김정문, 김연수, 정광수, 박귀희 등 기라성 같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를 길러냈다. 그러다 1949년 하동군 악양면 신대리 277번지 자택에서 76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선생의 묘는 악양면 중대리 905-1번지에 있다.
TAG
0
FMTV영상뉴스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기획특집더보기
주간포커스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