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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12-25 12: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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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으로 종가집을 잃은 지 100년이 넘는 저희 가문의 고난의 역사가 이제야 끝나려나 봅니다” 

안동종가음식산업화에 나선 (주)예미정은 12월 24일 안동시 정상동 안동종가음식체험관의 한옥 건물 일체에 대한 관리권을 호국 충절의 명문가인 안동권 씨 대곡문중 종손인 권대용(67)씨에게 위임하기로 하고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로써 권 씨는 앞으로 건축물의 임대수익은 물론이고 건물 전체를 종가로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며 후일 종가 복원에 도움을 받게 됐다.

권 씨는 김희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이 쓴 ‘독립운동으로 쓰러진 한 명가의 슬픈 이야기’라는 책과 ‘순국지사 권기일과 그 후손의 고난’이라는 책 속의 주인공이다. 그는 그 동안 조부인 추산 권기일 선생이 독립운동을 위해 처분한 종가집을 100년이 넘도록 되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대곡문중 종손인 추산 권기일 선생은 100년 전인 구한말 1910년 일제의 강제 한일병탄조약으로 나라를 잃게 되자 문중 종가집은 물론 천석에 이르던 종중 전 재산을 처분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마련했다.  이듬해인 3월 선생은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건너가 초대 임시정부 국무령인 석주 이상룡 선생 휘하로 들어가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으며, 1920년 신흥무관학교를 홀로 지키다 일군에 체포돼 순국했다.
 
또한 대곡문중은 400년 전 임진왜란 당시에도 종손인 권전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만호, 아장(亞將)이라는 벼슬로 해전마다 참전, 왜수군을 격파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우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는 기록이 충무공전서로 전해지는 등 대를 이은 호국충절의 명문가이다.

두 차례에 걸친 항일투쟁으로 문중 종손이 두 번씩이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독립운동으로 종가와 종중재산을 잃고 난 이후 경제적으로 몰락하면서 안타깝게도 멸문의 위기를 겪어 온 대곡문중은 이번 (주)예미정과의 MOU 체결을 계기로 100년 만에 종가집을 마련하고 호국충절의 명문가로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종손 권대용 씨는 “오늘 행사가 100여년 동안 계속되어 온 문중의 ‘슬픈 이야기’가 ‘기쁜 이야기’로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라면서 “앞으로 종가집 복원사업에 우선하고, 차세대들에게 호국충절의 정신을 심어주는 데 힘 쓸 예정”이라며 감동의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에 조일호 (주)예미정 대표도 “호국충절의 항일 명문가와 함께 종가음식 산업화를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이를 계기로 앞으로 체험관 사업의 공공성을 확대하여 지역사회 기여도를 더욱 높여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편 (주)예미정은 안동종가음식 산업화를 위해 부지 매입비와 건축비 등 약 30억여 원으로 3천6백여㎡의 부지와 연건평 약 1천6백여㎡에 체험관(700㎡)과 부대시설(900㎡)을 준공했다. 당초 사업계획은 9억 원(자부담 4억, 보조 5억), 700㎡ 규모였으나 (주)예미정이 체험관 자립운영 기반을 위해 21억 원에 이르는 추가 투자로 사업규모가 두 배로 확대 됐다. 앞으로 이곳에서는 종가음식의 산업화와 함께 다양한 체험교육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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