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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해역 내에서 1993년 전남 부안면 앞바다에서 292명의 사망자를 냈었던 ‘서해페리호' 침몰사고 이후 20년 만에 다시 일어난 대형 해상 선박 사고 ‘세월호’ 참사!
사고 13일째인 28일 현재 총 탑승객 476명 중 구조자 174명, 사망자 188명, 실종자 144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구조 및 시신인양 작업이 계속 진행 중이다.
필자는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사망자와 실종자들에게 바치는 애도의 뜻으로 조용히 자제하며 보낸 지난 일주일간 개인 SNS 마저 닫은 채 조용히 지냈지만 사고 13일째인 오늘 도저히 울분이 치밀어 오르고 분통이 터져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매스컴 보도를 통해 이미 다들 알고 있으며, 다시금 되뇌고 싶지 않은 내용이지만 되짚어 보기로 하자.
문제의 ‘세월호’는 1994년 9월 일본 하야시카네 조선소에서 건조된 여객선으로 길이 145M, 폭 22M, 6천 825톤의 국내에서 운행되는 여객선들 중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선박이었던 바, 건조 당시 일본 마루훼리사에서 ‘나미노우에’라고 불리며 사람들과 화물을 실어 날랐다.
이후 2012년 10월 국내에 매각되어 ‘세월호’라는 새 명칭으로 운항되어 오다 지난해 2월 인천과 제주를 주 2회 오가는 ‘청해진 해운’소속의 화객선으로 투입되었으며, 여객정원은 921명, 차량 220여대, 20피트 컨테이너 박스 154개를 동시 적재할 수 있는 일종의 ‘로로선’인 화객선이었다.
문제의 화객선 ‘세월호’는 지난 15일 밤 9시경 집단 희생된 단원고 수학여행팀 학생들을 태우고 짙은 안개로 인해 예정 출발 시각 2시간 늦게 제주로 향했으며, 이튿날인 16일 오전 8시 30분경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키로 지점에서 선수 부분에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해 두 시간 만에 완전 침몰했다.
이후 속속 전해지는 진실과 허상보도가 난무하는 가운데 ‘세월호’의 선장 이하 승무원들이 구속되고, 정홍원 총리가 사의를 표명해 사표가 수리 되는 등 많은 후속조처가 있어 왔지만 아직도 세월호 침몰원인과 승무원들의 늦장대응으로 많은 희생자를 낸 사유와 정부의 늦장대응에 대한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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