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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7-09-30 19:2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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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지방의 현모양처를 꿈꾸는 여성들이 모인 가운데 조선중기 시문과 서·화에 능할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에 귀감을 보임으로써 후세 위대한 어머니상으로 추앙 받은 정부인 안동장씨(貞夫人 安東張氏 : 1598∼1680) 추모 여성 휘호대회가 안동유도회 주관으로 30일 오전 10시 안동초등학교 체육관에서 200여명의 여성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정부인 장씨는 선조 31년 안동 금계리(金溪里)에서 태어나서 숙종 6년 83세를 일기로 경북 영양 석보촌(石保村)에서 타계하였다. 만년에 셋째 아들 갈암 이현일(葛庵 李玄逸)이 대학자이자 국가적 지도자에게만 부여하는 산림(山林)으로 불림을 받아서 이조판서를 지내면서, 법전에 따라 정부인의 품계가 내려졌으며, 이때부터 '정부인 장씨'라 불리게 되었다.

결혼당시 내외법이 더욱 강화되어 가는 시대였지만, 남편 석계 이시명(石溪 李時明)과 함께 부부는 서로 손님처럼[相敬如賓], 더 나아가 서로 동지로서 공경하면서, 때를 맞추는 중용[時中]의 모범을 보이는 여성중의 군자로서 살아갔다.

 
특히 그 재주를 숨긴 채, 한 가정의 평범하게 보이는 딸이자 가정 주부이면서도, 그 평범하게 보이는 힘으로 시가와 본가 두 집안을 모두 당시 사회공동체의 기둥이 되는 가문[宗家]으로 일으켜 세우고 더하여 열 자녀를 제대로 키워냈다.

한편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착함을 즐기고 의리를 좋아해서 옛 의리를 설명하면서 주위 사람을 착함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강인함과 온유함을 갖춘 도덕적 품성으로, 나이든 사람이나 과부, 고아처럼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아무도 모르게 힘껏 도왔고, 만년에 이를수록 숨겨둔 재주와 덕행이 드러나서 칭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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