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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옥종에 남명 조식선생 숭모비 제막 - 하동과 깊은 인연 선생의 경의사상.업적 본받고 기려
  • 기사등록 2010-12-21 09:4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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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이자 영남학파의 거두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의 정신적 표상인 경의사상을 본받고 그의 발자취와 업적을 기리는 숭모비가 하동에서는 처음으로 건립됐다.

지난 20일 하동군에 따르면 남명 조선생 숭모비 건립추진위원회(회장 하유집)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하동군 옥종면 양구리 양구삼거리에서 조유행 군수를 비롯해 숭모비 건립추진위 관계자, 유림, 지역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명 조선생 숭모비’ 제막식을 가졌다.
 
숭모비는 대리석 재질의 3단 기단에 높이 2.4m 넓이 0.8m의 오석으로 제작됐으며, 비문에는 선생의 업적, 하동(옥종)과의 관계, 비 건립 계기 및 의의 등이 새겨져 있다.

남명 선생은 출생지인 합천군 삼가면과 산청․김해 등 주요 생활 근거지에 서원과 사당, 기념관, 기념비 등 선생의 업적과 사상을 기리는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만 한 때 선생이 머문 옥종면 등 하동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물이 없어 이번에 숭모비를 건립하게 됐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실제 선생은 이순신 백의종군로 사업의 일환으로 복원사업이 추진 중인 옥종면 정수리 영당마을 청수역에 잠시 머문 것으로 알려졌으며, 선생의 조모는 옥종 삼장골 출신의 충절신 지족당 조지서 선생의 누님으로, 하동과 인연이 깊다.

선생의 학문과 지절도 지족당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컸다. 선생은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친정이 있는 옥종을 자주 왕래하며 많은 것을 배웠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섬진강․악양․쌍계사․청학동․불일암 등지를 유람하는 등 하동의 산천에 많은 자취를 남겼다.

숭모비 건립추진위 관계자는 “남명 선생이 주로 산청․합천 등지에서 생활하고 유적을 남겨 하동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며 “오늘 선생의 숭모비를 세운 것을 계기로 선생의 경의사상을 본받아 도덕이 되살아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남명 조식 선생은 퇴계 이황 선생과 더불어 우리나라 학문사상 양대산맥을 형성했으며, 명리를 추구하는 과거시험보다 자신을 수양하고 세상을 경륜할 수 있는 참된 학문을 추구한 대학자다.

모든 학문의 요체를 경의로 보고 올바른 마음가짐과 실천을 중시하는 학풍을 형성했으며, 임금이 13차례나 불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지절을 지켰다.

그러나 선생은 단순한 은자가 아니라 국정이 잘못됐을 때는 강직한 소장을 올려 바로잡은 백성의 정신적 지주였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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