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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7-06-29 17:5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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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뉴욕타임즈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대학을 '성공적'으로 졸업한 안토니 애브라함 잭씨를 주요 이슈로 다뤘다.

저소득층 출신인 잭씨는 애머스트대학으로부터 학비 일체와 함께 주당 7시간씩 시간당 8달러를 지급하는 근로장학금을 받았다.
 
잭씨에 대한 애머스트대학의 지원은 이뿐만이 아니다. 선발때부터 가족 총수입, 학부모 학력, 직업 수준과 같은 사회경제적 배경을 감안해 문턱을 낮췄고, 입학한 뒤에는 수업을 따라올 수 있도록 수학·과학 과외비용까지 지원했다.

인종과 경제적 격차를 뛰어넘는 적극적 평등 실현조치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애머스트대학 이외에도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스탠퍼드대, 버지니아대, 윌리엄즈대, 노스캐롤라이나대 등 유수의 대학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대학입학 문을 낮추고 있다.

일찌감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적극적 평등 실현조치(Affirmative Action. AA)를 도입한 미국의 대학들은 보수주의자들의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1978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의과대학에 두 차례나 떨어졌던 백인 남성이 '역차별'을 받았다며 제기한 소송에 대해 “인종이라는 단일기준에 의해 일정한 비율을 지정해 놓은 할당제는 위헌이지만 대학내 다양성을 위해 인종을 전형 요소 중의 하나로는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AA제도의 정신 자체는 합헌이지만 다른 학생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할당제 방식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대학들은 할당제를 버리고 다양한 방안으로 AA제도의 뜻을 살려 갔다. 소외계층이 불리함을 극복하고 경쟁하도록 가산점 방식을 도입하고, 고교내신 상위 10%에 드는 소수인종 학생을 자동적으로 합격시키는 방식을 마련했다.

어떻게든 사회적 약자를 뽑으려는 미국 대학들

하지만 미시간대 법학대학원에 지원했던 백인 학생이 가산점제 때문에 낙방했다며 위헌소송을 제기하면서 AA제도는 다시 분쟁에 휘말렸다.

2003년 6월 연방대법원은 일정 자격요건을 충족한 소수인종 입시생에게 우대 혜택을 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들에게 일률적으로 20점의 가산점을 주는 방식은 일종의 쿼터제라며 제한적 합헌 판결을 내렸다.

할당제와 가산점제를 할 수 없게 된 대학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방안을 도입했다.

예컨대 텍사스대 법학대학원은 전체 지원자들에게 역경 극복기를 써내게 하고, 텍사스주에 있는 라이스대는 지원자들에게 지원자의 문화적 전통에 관한 에세이를 쓰게 한다. 이를 통해 명시적으로 소수인종을 우대하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이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 효과를 노린 학생모집전략인 셈이다.

미국의 대학들은 사회경제적, 인종적으로 다양한 출신의 학생들을 뽑는 것이 대학경쟁력에도 도움을 준다고 믿고 있다.

버클리 대학의 한 입학사정관은 “가난한 가정이나 소수인종 출신의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SAT 성적이 중간이거나 낮더라도 자신이 다닌 학교에서는 아주 높은 점수”라며 “버클리 대학이 원하는 학생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 안에서 최고를 이룬 학생들”이라고 설명했다.

배경·사고·경험의 다양성이 기업 경쟁력

애머스트대학의 안토니 막스 총장도 "우리 대학은 여러 부류의 유능한 인재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나타난 성적보다는 다양성과 가능성이 대학 전체의 교육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근거에서다.

이러한 믿음은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3년 미국 연방법원이 소수민족 입학우대정책에 대해 제한적 합헌 판결을 내리기 이전 제너럴모터스, 인텔 등 세계적인 40개 기업은 이 제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제한적 합헌판결이 나자 제너럴모터스의 로드 길럼 부사장은 “배경과 사고, 경험의 다양성이 교육프로세스에서 필수적이라는 것이 제너럴모터스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밝혔고, 제약업체 화이자의 대변인도 "법원이 우리와 같은 기업들의 입장을 고려해 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환영했다.


기회균등할당제는 도덕적 가치를 넘어 경쟁력의 핵심

대학입시가 중고등학교 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경제적 여건에 따라 교육성과가 다른 것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학총장 토론회에서 한승동 대덕대 학장은 “전문대 학생의 60% 이상이 저소득층이고, 25~26%는 결손가정 출신”이라며 “우리사회의 문제로서,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강조했다. 반면 올해 서울대 신입생의 61.4%가 소득 상위 20%에 속하며, 생계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는 단 25명에 그쳤다.

서울대는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장학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장학제도는 입학의 문턱을 넘은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다. 이미 경제적 환경이 교육 결과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바늘구멍을 통과한 몇몇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교육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정부가 26일 발표한 기회균등할당제는 이처럼 경제적 격차가 교육격차로 굳어져 계층이동의 기회가 줄어드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다. 기회균등할당제가 도덕적 가치를 뛰어넘어 국가경쟁력의 핵심 전략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 대학의 반응은 냉랭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다양한 대책을 고민하는 미국 대학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일부 대학은 기회균등할당제 등에 대해 '부당한 간섭', '자율권 침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일부 대학의 교수는 기회균등할당제보다 공교육을 정상화하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미국의 대학들이 자율적인 입시방식을 통해 소수자와 약자를 우대하려는 반면 우리나라의 소위 '유수' 대학들은 중등교육 정상화와 지역·계층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내신을 강화한 2008 대학입시 방식을 자율성 침해라고 호도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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