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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한 민간 경제연구소 보고서들 - 소득하위 20% 평균 ‘마이너스 저축률’을 ‘국민 20% 빚내 생활’로 뻥튀기
  • 기사등록 2007-05-07 18: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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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과 7일 국내 거의 대부분의 신문 방송이 ‘국민 20%, 빚 내서 생활’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내보냈다. 자료의 출처는 민간 경제연구기관인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다. 일부 방송은 ‘우리 국민 5명 중 1명은 빚을 얻어 산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나왔다’고도 전했다.

가뜩이나 저축률이 낮은 터에 국민 10명 중 2명이 빚을 내서 생활한다는 제목의 보고서는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거의 의문의 여지없이 사실처럼 보도됐다.

그런데 진짜 그런가? 현대경제연구원이 매주 내놓는 ‘한국경제주평’ 에 실린 ‘국민의 20%는 빚내어 살고 있다-외환위기 후 소비·저축 패턴의 변화’보고서 전문을 읽고 나면 이 보고서의 제목과 언론 보도 내용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금방 드러난다.

결론부터 말해 ‘국민의 20%가 빚 내어 살고 있다’는 보고서 제목를 보면 이것이 과연 경제연구소에서 내놓은 것인지부터 의심이 갈 정도다.

그것은 통계청의 가계수지 동향 자료를 편의대로 확대해석한 전형적인 뻥튀기이자 흥미 위주의 센세이셔널의 극치다. ‘우리나라 소득 1분위 계층(소득 하위 20%)의 평균 저축률이 마이너스’라는 통계자료만 가지고 ‘국민의 20%가 빚 내서 산다’는 수준 이하의 제목을 뽑은 것이다.
 

. 이 중 1분위 계층의 저축률이 마이너스라는 부분을 '국민 20%가 빚내서 산다'고 확대해석했다.

이 보고서가 ‘국민 20%는 빚내어 살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동원한 데이타는 바로 통계청의 각 연도별 가계수지조사를 토대로 만든 ‘소득계층별 저축률 추이’다.

이 자료는 국내 전체 가구수를 소득별로 1~5분위별로 산술적으로 20%씩 5등분 한 후 각 분위별 저축률을 조사한 것이다. 이는 가계라는 경제주체가 처분가능한 ‘소득’ 중 소비하고 남긴 부분을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재산을 제외하고 소득만을 기준으로 저축률을 조사한 만큼 통계청을 이를 엄격히 가계 흑자률이라고 발표한다. 가령 2005년 우리나라 가계의 평균 저축률은 25.0%로 평균적으로 100원을 벌어(소득) 75원을 소비한 후 25원 정도를 저축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의 본문과 원천 데이터인 통계청의 가계수지 동향 자료 어디에도 ‘국민의 20%가 빚내어 산다’는 제목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

2005년 소득하위 20%(1분위) 계층의 평균 저축률이 -13.5%라는 내용만 담겨 있을 뿐 특정시점 기준으로 국민 20%의 부채 또는 적자에 대해 다룬 내용은 없다.

보고서가 통계청을 인용해 제시한 '소득계층별 저축률 추이'에 따르면 2005년 계층별 저축률은 △1분위 -13.5% △2분위 10.4% △3분위 21.9% △4분위 27.4% △5분위(상위 20%) 37.5% 등이었다.

통계청의 '2005년 가계수지 동향'을 확인한 결과, 이는 '도시근로자가구의 소득 5분위별 가계수지' 자료에서 흑자율을 따온 수치였다. 여기서 흑자율이란 각 계층의 전체 흑자액을 전체 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눈 비율이다.

결국 보고서는 도시근로자가구 가운데 소득하위 20%가 평균적으로 처분가능소득의 13.5%만큼 적자를 기록했다는 내용을 두고 “국민의 20%는 빚내어 살고 있다”는 ‘흥미진진한’ 경제분석 보고서 제목을 뽑아낸 셈이다.

신뢰성 있는 경제연구기관이라면 적어도 ‘국민의 20%가 빚내서 살고 있다’는 제목을 내놓으려면 적어도 이를 직접적으로 뒷받침 할 수 있는 ‘전체 가구 가운데 실제로 흑자 가구와 적자 가구가 각각 얼마씩인지’를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소득하위 20%의 가계수지를 따져봤더니 ‘평균적’으로 소득이 적어 저축을 못하고 적자였다는 사실만으로 ‘국민 20%가 대출을 받아 그 돈으로 생활하는’ 의미의 제목을 내놓은 의도를 이해하기 힘든다.

‘평균’이라는 말이 늘 그렇듯, 소득 하위 20% 가구 중에도 흑자가 있고 적자도 있게 마련이니, 국민 전체 가운데 20%가 적자라는 말과는 엄격히 다르다. 흑자인 쪽이 아무리 많아도 적자인 쪽의 적자규모가 크면 평균적으론 적자가 날 수도 있다.

엄밀히 말해 마이너스 저축률이 그대로 가계 빚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이는 재산을 제외하고 소득만을 기준으로 가계를 5분위로 나눈 것인 만큼 소득이 없거나 적은 연금 수입자 가운데 재산이 많은 사람도 이 기준으로 보면 마이너스 저축률에 들어가고, 현대경제연구원의 기준으로 보면 이 고액 재산가가 빚 내서 생활하는 국민 20%에 들게 된다.

또 소득 1분위 계층의 저축률이 1998년 이후 8년째 마이너스인 만큼, 이 보고서의 주장대로라면 1998년에도 국민 빚내서 살고 있었고 2005에도 똑같이 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나라 가계 저축률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저축이 적은 만큼 빚을 내서 생활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저축률 하락은 1차적으로 가계 소득 증가율이 소비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이 밖에도 가계자산이 지나치게 부동산에 편중돼 있고, 외환위기 이후 가계 소비패턴의 고급화, 고령화에 따른 부양부담 증가 등도 그 원인이다.
 
이같은 현대경제연구원의 뻥튀기 보고서는 얼마전 삼성경제연구소가 작성한 ‘가계부채의 위험도 진단’ 보고서와 이를 인용한 언론들의 보도 행태를 연상하게 된다.

당시 일부 언론은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가계부채 위험 수위가 2002년 카드대란 당시의 버블붕괴 수준에 근접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블룸버그의 한 경제 칼럼니스트가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해 가계 신용 거품이 꺼지면 경제가 침체로 갈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를 국내 언론이 또다시 '블룸버그, 한국 부동산발 경기침체 경고'라는 제목으로 핑퐁식 보도를 했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가계금융부채·가계금융자산 등 5가지 투입변수만을 사용하여 단순히 위험지수를 산출하고 있어 분석의 오류 가능성이 높고, 2002년 카드대란 당시와 현시점에서 대내외 경제환경, 금융시장 및 금융산업의 변화를 감안하여 분석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는 논란이 일었다.

최근의 가계대출 증가 속도와 규모를 볼 때 10% 내외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신용버블기인 2001∼2002년 당시의 약 28%에 비해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계의 채무상환능력을 살펴보면 대체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최근 가계신용 증가문제를 2002년 신용카드 사태 당시와 유사한 위기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나, 가계신용 증가속도, 대출의 성격과 질, 대출건전성과 금융기관의 건전성, 대내외 여건, 정부의 대응 등의 측면에서 그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이 때문에 이 보고서는 아직 부동산 시장의 안정 조짐이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계부실 위험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금융시장의 불안을 불필요하게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됐다.

잘못된 통계 인용과 해석으로 경제를 분석하고, 그 내용이 언론을 타고 확대 재생산되면 경제주체들에게 잘못된 시그널과 우울증을 심어줄 수도 있고, 이를 토대로 한발 더 나아가 정책제안까지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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