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안동댐 진입로 "회화나무" 새벽중 " 베어져 있어" - 22일 새벽 3시경, 누군가에 의해 기계톱으로 절단된 흔적, '경찰이 수사에 나…
  • 기사등록 2008-08-22 15:41:35
기사수정

안동댐 진입로에 위치한 회화나무(일명 회나무)가 오늘 새벽(2008.8.22. 03:00경) 누군가에 의하여 베어져 지금은 그 나무의 그루터기만 남아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수령은 아마도 족히 300년이 넘을 나무로 그러한 나무 한그루를 키우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하였고 또한 그 나무에 대한 사연은 얼마나 많았던가.

안동을 찾거나 또는 일부 시민들이 교통에 불편을 느낀다며 왜 그 나무를 베어내지 않느냐고 시청에 항의 전화와 문의도 수많이 있었는데 나무가 베어지고 보니 그 분들은 마음이 후련할지 모르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에 안타까움과 함께 그것도 문화인데 현실의 편리만 추구하는 우리들의 짧은 생각을 다시 한번 돌아볼 사항은 아닌가 하는 심정에서 몇 자 적어본다.
 
원래 그 나무는 임청각 99칸짜리 집 대문밖에 있던 나무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지금도 안동의 각 문중 종택이나 서원문 밖에는 어김없이 회화나무가 서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회화나무는 옛 군청 마당에도, 옛 향교터인 시청마당에도, 도산서원 광명실 앞에도, 집성촌인 내앞마을, 소산마을, 가일마을, 하회마을, 오미마을, 하리마을 등 안동의 수많은 종택앞에 회화나무가 있고 임하댐 수몰로 물에 잠긴 무실종택 앞에 있던 나무도 수곡리 이주단지로 이건 식재 하였다.
 
석주 이상룡선생께서 가산을 정리하여 독립자금을 마련하고 임청각을 떠나 만주로 향할 때 그 나무아래에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 지금 우리들이 되새겨 볼만도 한데 일제36년 강점기하에 일본인은 왜 안동에 철도를 놓을 때 낙동강 철교에서 안기동을 통한 북후로 연결되는 직선길이 가능한데도 왜 임청각 아래채를 다 헐어버리고 그 자리로 철도를 놓았을까.
 
지금은 그 철도로 인하여 임청각과 법흥7층전탑(국보)을 보호코자 안동시에서는 철도청에 철도이설을 건의하고 있는데 말이다.

안동댐이 건설될 당시 1970년대 일어난 일이다. 안동댐을 만들면서 수많은 대형차량이 진입로의 그 나무 옆을 통과하면서 교통 불편이 있어 그 나무를 베어내고자 인부를 시켜 톱으로 가지를 자르다가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후 중장비(포크레인)를 이용하여 나무를 제거하려다 포크레인 삽날이 부러지는 일이 발생한 이후 안동시민들에게는 그 나무는 귀신나무 또는 신목으로 널리 알려져 왔었다.

그래서 그 나무를 베어내면 돈 얼마를 준다느니 하는 설도 있었다.

또한 수년전 부터는 안동지역 무속인들에 의하여 내림굿을 받는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고 또한 정월 보름이면 그 나무에 누군가가 금줄을 치고 제사를 올리고 하였다.

이처럼 안동인의 삶과 고성이씨 임청각의 혼, 안동댐 건설의 흔적등, 그 시절 안동인들의 삶의 애환과 흔적들이 담긴 안동댐 진입로에 서 있던 회화나무의 일화는 이제 모든 것이 사라져 갔을 뿐이다.

그 도로는 안동댐 진입도로로서 안동시가 관리할 뿐 그 주인은 수자원공사 안동댐관리단이다. 그래서 필자는 안동댐에서 이참에 베어진 나무 그루터기를 제거하고 도로를 포장하는 일이 능사는 아니라 그 자리의 그루터기를 보존하고 거기에 자그마한 다른 회화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길을 확장하는 것은 지금의 좌우측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베어진 나무를 지금의 상태로 돌리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는가. 그것보다 일제의 만행 안동댐 축조의 흔적, 석주선생의 나라사랑하는 마음 등을 생각하고 지금까지 그 나무의 파란만장한 사연도 문화가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 안타깝다라는 말 외에는 .......


안동시청 총무과 김자현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fmtv.co.kr/news/view.php?idx=21175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키위픽마켓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