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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6-03 08: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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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TV 표준방송 수도권 박상복 기자}


▲ 장충단 호국의 길




 6월 호국의 달, 중구가 운영하는「장충단 호국의 길」, 「남산 기억로」해설사 탐방코스를 둘러보면서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되새겨 보자.


「장충단 호국의 길」은 장충단비→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이준 열사 동상→이한응 열사비→유관순 열사 동상→3.1 독립운동 기념탑→김용환 지사 동상→국립극장까지 이어진다. 6km의 코스를 약 2시간 동안 걸으면서 우리의 아픈 과거를 돌아볼 수 있다. 


「장충단 호국의 길」은 장충단비→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이준 열사 동상→이한응 열사비→유관순 열사 동상→3.1 독립운동 기념탑→김용환 지사 동상→국립극장까지 이어진다. 6km의 코스를 약 2시간 동안 걸으면서 우리의 아픈 과거를 돌아볼 수 있다. 


장충단공원 일대가 호국정신으로 가득한 공간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1900년 고종은 을미사변 때 순국한 장병을 기리기 위해 장충단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1910년 일본은 제사를 금지하고 장충단을 폐사한 후 1920년대 후반에 공원시설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장충단공원이 된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유교계 대표 137명은 2천674자에 달하는 장문의 독립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보냈다. 파리장서비는 이를 기념하고자 건립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유림들은 탄압을 받았지만 유교계가 독립운동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이준 열사는 1907년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파견됐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와 열강들의 냉대 탓에 뜻대로 활동하지 못하자 분을 참지 못하고 현지에서 순국했다. 유해는 1963년 국내로 모셔 와 수유리에 안장하였으며 이듬해인 1964년에는 장충단공원에 동상을 건립했다.


호국선열의 상징과도 같은 유관순 열사의 동상과 3.1독립운동 기념탑 앞에 서면 앵국탐방은 절정에 이른다. 원래 숭례문 앞에 있던 유관순 열사 동상은 1971년 현재 위치로 이전되면서 장충단공원을 애국정신의 성지로 만들었다. 3.1독립운동 기념탑은 높이가 19m 19cm인데 이는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을 의미한다.

「남산 기억로」 탐방코스는 남산 곳곳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침탈 흔적을 돌아보는 역사 탐방길이다. 남산골 한옥마을→ 통감관저 터→통감부 터→ 왜성대 터→ 노기신사 터→ 경성신사 터→ 한양공원 터→ 조선신궁 터의 3km 코스를 2시간에 걸쳐 걸으며‘다크 투어(비극적인 역사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할 수 있다. 


▲ 장충단 호국의 길 리플렛



일제는 남산 곳곳에 식민 통치를 위한 건축물을 세웠다. 남산 가까이에 궁궐, 사찰, 시장 등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모였기 때문이다. 1898년 경성신사가 현재 숭의여대 자리에 들어섰고, 1907년에는 통감부가 지금의 남산예장공원 자리에, 이듬해인 1908년에는 일본군 헌병대사령부가 지금의 남산 한옥마을 자리에 세워졌다.


1925년 일제는 남산에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조선신궁을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남산 자락에 쌓았던 한양도성 성벽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조선신궁이 지어지자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를 강요했다. 지금도 조선신궁으로 올라가는 계단 일부가 남아 있다. 2005년 방영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유명해진 ‘삼순이 계단’이 바로 그 흔적이다.


「장충단 호국의 길」, 「남산 기억로」등 해설사 탐방코스는 서울 중구청 홈페이지에서 탐방 희망일 5일 전까지 신청하면 된다. 4인 이상 모이면 탐방이 진행된다.


구 관계자는“남산의 아름다운 자연 뒤에 숨겨진 역사의 교훈과 선열들의 희생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도심 속 숨겨진 역사문화유산을 알리고 관광객 유치도 할 수 있는 관광 콘텐츠를 앞으로도 계속 발굴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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