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은 물론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이 된 구미시가 시승격 30주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이립(而立)이 된 구미시는 30주년을 ‘구미경제 제2도약의 원년’으로 삼아 성공도시의 신화를 새롭게 써갈 각오를 다지고 있다.
깊은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선산’과 금오산, 낙동강 등 천혜의 자연자원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내륙최대의 수출산업단지가 들어서 있는 ‘구미’가 조화롭게 결합돼 탄생한 구미시는 가장 완벽한 지역 통합을 통해 ‘도농복합도시의 전형’이 됐다.
이제는 수출 350억불, 경제자유구역, 과학연구단지, 모바일필드테스트베드 등의 경제적인 경쟁력과 대구경북 환경문화대상, 평생학습도시, 경영성과부문 2년 연속 1위, 복지종합평가, 주민서비스 혁신평가 등 각 분야에서 전국 지방자치단체 선두를 달리고 있는 구미시. 천혜의 자원과 지리적․입지적 조건, 근면한 시민들의 노력으로 후퇴 없는 성장가도를 달리며 ‘디지털도시’의 세계적인 아이콘브랜드로 거듭나는 구미시의 30년 성장과정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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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의 변천 신라 초기 일선군으로 불리던 구미는 일선주, 숭선군, 선주, 일선현 그리고 조선시대 들어서면서 선산군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지금의 지명이 된 구미는 선산군에 속한 작은 마을이었는데 고려 성종 때의 문헌에 의하면 별 다른 뜻이 없는 ‘구며’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가 지금의 구미(龜尾)로 변천됐다.
근대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구미에 역이 들어서고 1969년부터 개발이 시작된 구미공단으로 인해 선산군 구미읍으로 격상됐다.
1977년 2월 15일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관할로 한 ‘경상북도 구미지구출장소’가 설치됐으며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의한 전자 및 수출공업단지 조성에 따른 신흥산업도시의 행정수요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1년 만인 1978년 2월 15일 구미시로 승격됐다.
이후 1995년 1월에 비로소 선산군과 구미시가 통합돼 역사와 전통, 쾌적한 자연환경과 첨단산업이 조화를 이루는 전국 최고의 도농복합도시가 탄생했다.
시승격 이후 30년 동안 변화된 것들 인구 시승격 원년인 1978년 구미시의 인구는 7만2천37명(남자 33,207명, 여자 38,830명)이었으며 120,11㎢의 면적에 총 가구수는 12, 531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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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면적은 3백75만여 평, 입주업체는 177개 업체였으며 근로자는 2만7천명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선산군과 통합 전이어서 선산군 통계가 포함돼 있지 않다.
선산군과 통합된 1995년 인구는 31만 1,431명(남 15만7,820명, 여15만3,611명) 617,28㎢에 총 가구수는 86,019호이며 외국인 수도 1,804명으로 집계됐다.
현재의 인구는 2008년 1월 말을 기준으로 39만2,494명(남 19만9,436명, 여 19만3,058명)이며 총 가구수는 14만7,779호, 외국인 수는 5,124명이다.
행정 78년, 시 개청과 함께 개편된 행정조직은 시장과 부시장 1건설담당관 3실, 14과 1비상대책관, 21개 행정 읍면동의 기구로 조직됐으며 공무원 수는 487명이었다.
2008년 현재 행정조직은 40만 시민의 행정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1실․4국 (6담당관 21과), 1출장소(4과), 1의회사무국, 3직속기관(5과), 8사업소(5과), 2읍 6면 19동이며 공무원 수는 1,510명으로 늘어났다.
재정 규모도 78년, 총 78억3천55만1천원(일반회계 29억7천1백4천원, 48억5천954만7천원)에서 2008년 총 7,001억원(일반회계 5,205억원, 특별회계 1,976억원)으로 약 90배가 증가했다.
구미시는 현재 재정자립도 44.8%, 1인당 지역내 총생산량인 GRDP 4만5천32달러로 경제적 자립이 전국 최고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수출 구미공단이 들어선 후 구미는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수출산업도시의 명성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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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출 선적을 올린 71년도에는 800만 불을 기록했고 75년도 1억불, 78년 4억5천5백만 불, 95년 64억5천만 불 그리고 지난 2007년에는 350억불을 달성함으로써 350배가 넘는 수출 증가세를 보여 내륙 최대의 수출도시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교하지만 78년 대중교통 중 택시는 법인 및 개인택시 포함 72대, 버스는 80년을 기준으로 27대가 전부였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택시 1,632대, 버스 138대로 증가돼 시민들의 발이 되고 있으며 등록된 차량 대수도 관용 및 영업용 포함 총 15만대를 넘어섰다.
의료 78년, 서민들의 의료기관인 보건소는 1개소에 지나지 않았으나 2008년 현재 2개의 보건소와 8개의 보건지소가 지역 곳곳에 설치돼 시민들의 건강 관리는 물론 각종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민간의료기관인 6곳의 의원과 3곳의 치과, 3곳의 한의원, 16곳의 약국이 있었던 78년도에 비해 현재는 2곳의 종합병원과 185곳의 의원, 2곳의 한방병원, 84곳의 한의원, 94곳의 치과, 3곳의 요양병원 등 총 373곳의 의료기관이 있다.
기타 이외에도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을 통해 쾌적하고 푸른 녹색도시에 조성에 힘을 쏟고 있는 구미시의 가로수 및 조경수 식재 현황은 78년 1만9천여 본에서 현재 37만491본으로 증가했으며 공원도 근린공원과 어린이공원 포함 총 96개소가 조성돼 있다.
통 국도와 철도는 물론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길인 경부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까지 갖춘 사통팔달의 교통망과 초고속시대의 상징인 KTX까지 구미역에 8회 정차하는 구미시는 그야말로 수출산업도시로서의 조건을 다 갖췄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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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시장 구미시의 초대시장은 백세현(白世鉉)씨, 초대 부시장은 조갑희(趙甲熙)씨가 취임했다. 하지만 백시장은 6개월 만에 수원시장으로 전출을 가고 78년 8월 2일 제2대 시장으로 李圭善시장이 취임했다.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95년 민선시대 첫 시장은 시장선거에서 46%의 득표율로 당선된 김관용 시장이다. 이후 10년간 재선에 성공, 3번에 걸쳐 구미시장을 역임했다.
현재의 남유진 시장은 지난 2006년 실시한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그해 7월 1일, 시장으로 취임했다.
남시장은 경제분야를 비롯해 도시․행정분야, 농업분야, 교육․문화․체육분야, 사회복지분야 등 총 5개 분야 33대 공약으로 집약된 구미발전 희망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남시장은 지난해 제2회 UCLG(세계지방자치단체연합) 아시아태평양지역 대표로 세계위원에 선출됐으며 ‘헤럴드경제’ ‘미래를 여는 인물’로도 선정됐다.
세월 따라 달라지는 시정 방침 78년 백세현시장은 시승격 원년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맞게 시정방침을 ‘새구미사 창조’로 정했다. 그리고 ’유신총화, 공업화 촉진, 전원도시 건설 등이 실천해가야 할 방향으로 설정됐다.
이후 ‘밝고 건강한 새구미를 건설하자’, ‘80년대를 선도하는 새구미 건설’, ‘밝고 푸르고 활기찬 선진도시 건설’, ‘자랑스런 구미를 만들자’, ‘믿음 심는 시정․희망을 찬 시민’, ‘함께 뛰는 시민 앞서가는 구미’ 등 시대에 맞게 발전했다.
현재 구미시정 슬로건과 방침은 『위대한 구미 찬란한 구미』, ‘잘사는 구미, 건강한 도시, 행복한 시민, 어울림 문화’로 정주여건을 충분히 갖춘 살기 좋은 도시, 세계 속의 명품도시를 지향하는 구미시의 의지가 그대로 담겨져 있다.
낙동강이 시의 중심으로 흐르는 구미시는 비옥한 땅과 풍부한 수자원으로 인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의 터전이 된 곳으로 고인돌과 선돌 등의 유적이 그 흔적으로 남아있다.
특히 고대 아시아문명인 불교가 고구려를 거쳐 아도화상에 의해 신라에 처음으로 전해진 ‘신라불교초전지’라는 역사성도 지니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의 기초를 다진 영남사림파의 근거지였다.
고려의 충신인 야은 길재를 비롯해 강호 김숙자, 여헌 장현광 등 학자와 사육신 하위지, 생육신 이맹전 등 명현(明賢), 한말 의병대장인 왕산 허위 등 숱한 애국지사, 명창 박록주, 국가 경제의 기틀을 다진 고 박정희 대통령을 배출한 인재의 고장이다.
총 75개의 국가 및 도 지정 문화재와 영남농악의 모태인 무을농악, 풍요로웠던 농경문화를 말해주는 지산발갱이들소리 등은 구미시가 뿌리 깊은 전통문화를 간직한 곳임을 말해준다.
구미는 이러한 문화적 정체성과 역량을 바탕으로 문화다양성시대를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모아 지난 2007년『구미다문화축전』을 개최했다.
구미의 공단은 총 24.9㎢로 구미공단 1.2.3단지 17.8㎢과 4단지 6.8㎢ 그리고 0.34㎢의 농공단지가 있다.
기업체 수는 1,772개사 (대기업 61, 중소 1,711)이며 근로자는 총 94,279명이다. 수출되는 제품으로는 전자제품 77%, 광학제품 12%, 섬유 3% 순이다.
2007년 44조원의 생산을 했던 구미시는 올해 생산목표를 52조원으로 잡고 있으며 수출목표를 380억불로 설정했다. 이는 경북수출(450억불)의 77.8%, 전국(3,715억불)의 9.4%에 해당하는 수치다. 무역수지흑자 또한 235억불로 전국 148억불의 159%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수출경제의 중심이 되는 구미공단은 1969년 전자공업진흥법이 제정되고 1970년 8월 24일 구미전자공업전문단지 조성이 결정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갔다.
구미공단 제1단지는 경상북도가 주도한 일반단지 제1, 2공구와 한국전자공업공단이 주도한 전자단지 제1,2,3공구로 나뉘어져 연차적으로 조성됐다.
1973년 11월에 완료된 전자단지 제3공구 개발사업은 강 중심에 있었던 335만㎡의 신만주섬을 매립하여 455만㎡이라는 거대한 부지를 조성함으로써 낙동강의 지도를 바꿔놓은 대 역사로 기록됐다.
당시 폴리에스텔을 중심으로 한 섬유산업이 전국 최고를 달리던 구미에는 코오롱과 제일합섬 등 굴지의 업체들이 입주했다.
또 우리나라 전자부문의 대들보라 할 수 있는 금성사와 삼성, 대우의 전신인 대한전선이 들어섰다. 행정편의를 위해 공단본부와 세관, 우체국, 은행 등도 들어섰다.
제1단지 조성이 완료된 1973년 뜻하지 않은 제1차 유류 파동은 입주업체들을 어렵게 했다. 이를 계기로 부가가치가 높은 전자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제2단지 개발사업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1976년, 1단지의 낙동강 건너편인 임수동, 황상동, 구포동 일대에 제2단지 조성이 결정됐고 1978년 7월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1981년 10월 230만㎡의 단지 조성이 완료됐다.
마스터플랜인 7대 역점시책을 통해 한국 최고, 나아가 세계 최고의 경제도시로 웅비하는 구미시를 만들어가겠다는 남시장이 30주년을 맞아 가슴깊이 다짐하는 각오다.
한편 구미시는 오는 2월 15일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시승격 3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기념식을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