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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태의 [기고] 2020년의 설날은 '응답하라' - 21C 관혼상제의 탈바꿈, 1980년대와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었다 - 유교적 형식을 갖추던 ‘설날’의 모습이 아니라는 시대적 흐름을 느껴 - 명절증후군이란 제사기피 현상에 묵시적인 동조를 선호하고 있는 실정
  • 기사등록 2020-01-29 20:07:47
  • 수정 2020-01-29 20: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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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설날은 ‘응답하라 1980년’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었다.

 

그저 ‘민속명절 설날’로 자유롭게 먹고 놀고 해외로 자연으로 여행하고 즐기는 모습들이, 고향에서 조상님 모시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집안(8촌 이내)끼리 숙명적인 우애를 나누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한마디로 핵가족으로 유교적인 틀을 벗어나 즐기는 ‘설날’이 되었고, 대가족으로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유교적 형식을 갖추어 의무를 다하던 ‘설날’의 모습이 아니라는 시대적 흐름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정초에 친구의 아들 결혼식에 가보니 주례가 없이 사회자와 결혼당사자의 인사로 진행되었다. 요즈음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결혼식 풍경이다. 때로는 혼주들이 직접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주례사를 대신하여 신랑신부에게 자축인사를 하는 장면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이 또한 과거의 유교적 형식을 벗어난 21C의 파격적인 혼례이다. 2년 전에 필자도 신부님의 주례사 없는 자유예식으로, 양가혼주와 신랑신부 각자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낭독하게 하여,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른 기억이 아직도 감격스럽다.

 

제례 또한 시대적인 변화로, 퇴근길에 친구와 술 한 잔 하자고 하면, 금방 제사지내고 나오겠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과거의 기일은 전날저녁에 준비를 하여 당일 첫 시(자시 : 밤11시~새벽1시)에 제사를 지냈지만, 지금처럼 초저녁에 제사를 지낼 경우는 당일저녁에 지내는 방식이다. 10여 년 전에 동료가 어른 제사와 아들 생일이 같아서 아들 생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하여, 당일제사로 하면 아들 생일 하고 다음날 저녁제사 지내면 되지 않겠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안한 적이 있다.

 

성인식이라는 관례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만20세가 성인 기준이지만 최근 선거법 개정으로 18세 선거권이 주어졌다.

 

과거의 관례의식은 지금은 간소화되어 단체로 기념식이나 축배를 드는 식으로 변해가고 있다. TV화면에 나오는 인디언 부족들의 관례의식도 아직은 전통방식을 이어오고 있는 것 같지만 차츰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성인 기준이 젊어지고, 성인 관례도 간소하게 축배를 드는 형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관혼상제에서 가장 까다로운 상례를 살펴보면 그 변화가 더욱 실감난다. 3년 탈상에서 3일 탈상으로, 고대의 비단상복에서 근대의 삼배상복을 거쳐서 현대의 양복상복까지, 조율시이(감이먼저)냐, 조율이시(배가먼저)냐, 홍동백서냐, 좌설이냐, 우설이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진설에 가가예문이란 비아냥이 정설이 되어버린 웃지 못 할 현실이 되고 말았다. 또 하나는 바쁜 현대생활에서 기제사를 한꺼번에 모아서 지내는 풍습이 확산되고, 설상가상으로 명절증후군이란 제사기피 현상에 묵시적인 동조를 선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의 자유와 다양한 종교의식의 차이에 따라 관혼상제도 여러 가지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유교적인 집단생활 의식으로 일원화되었던 관혼상제가, 지금은 다양한 종교의식과 개성적인 생활문화로 다원화되어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본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숭배하는 사상과 이념은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어떤 종교나 문화의 형식과 절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절을 하던지, 기도를 하던지, 아니면 자유롭게 관혼상제의 의미를 새기면 된다는 생각이다.

 

2천여 년 전에 공자의 유교사상은 순수한 인간존중 그 자체였다고 한다. 제례의 경우 평소의 밥상대로 검소하고 청결하게 차려놓고 조상님을 기리는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오늘날처럼 많은 음식ㆍ과일을 쌓아놓는 것이 아니라, 밥상에 과일 두세 개 정도만 정성껏 올렸다고 한다. 그 이후로 우리 후손들이 욕심으로 쌓아올린 상차림이 지금 같은 고민을 자초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에 따라 생활양식이나 관혼상제가 탈바꿈 하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다만, 동방예의지국으로서 관혼상제의 본질만큼은 변하지 않아야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지 않고, 자손만대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휘태(안동시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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