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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2-20 17:09:10
  • 수정 2017-12-20 17: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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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유억불 정책의 조선 600년 역사에서 유교문화를 가장 아름답게 꽃피운 경북 안동에서 2006년 7월 4일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이름을 내건지 10년이 지났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엄청난 슬로건을 내거는데 대하여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과연 타 지역에서 순순히 인정을 해줄까 하는 걱정도 되었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만하면 이제는 확실하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역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고 평가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 의미를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이야기 할 수 있는 성리학사상과 자주독립운동은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그야말로 위대한 안동정신으로 21C를 이끌어갈 인간중심의 보편적 인류행복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가 되고 있다고 본다. 퇴계 이황 선생의 심오한 철학은 소생이 잘 모르더라도, 며느리를 재가시키고, 정신적 충격을 받은 부인을 맞이하고, 흰옷에 붉은 천 조각을 꿰맨 도포를 입고 궁궐에 들어가 부인의 정성이라고 웃어넘기는 인간미야말로 유교사상의 진미가 아닌가 생각된다.

 

나주에서 찾아온 제자가 부인을 홀대하고 글 만 배우고자 하니 가화만사성을 일깨우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실천하라며 집으로 돌려보낸 일화나, 퇴계 선생보다 나이가 35세나 어린 율곡 이이 선생이 찾아오니 나이와 사람생각은 상관이 없고 봄이 와도 봄인 줄 몰랐다는 반갑고도 정중한 대학자로 맞이한 일화 역시 진한 인간미가 흘러넘치는 성리학의 궁극적인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주의와 민본정신은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자주독립운동으로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바쳐가며 이 나라 이 민족을 지켜왔다. 1592년 임진왜란에 경북지역 1만여 명의 백성들이 의병을 일으킨 안동열읍향병(安東列邑鄕兵)은 의성, 군위, 대구, 영주, 예천, 문경, 상주, 경주까지 왜군들을 격퇴시켰으며, 문경새재를 넘는 요충지 당교(상주 함창)에 주둔한 왜군을 해를 넘겨가며 수도 없이 공격하여 북부지역 마을과 백성들을 보호하고 왜군의 군량미 확보를 위한 전라도 곡창지대로의 진출을 차단하였다.

 

지난해 10월 임동 수곡에 개원한 안동충의역사체험관 기산충의원 기념비에는 류복기ㆍ복립 형제와 10살짜리 막내까지 다섯 아들을 모두 데리고 1592년 임진왜란 의병전투에 참여한 처절한 역사가 새겨져 있고, 하회마을에는 서애 유성룡 선생의 한 맺힌 징비록이 쓰여 있으며, 풍천 가일마을에는 권오설 독립투사가 차디찬 철관에 묻혀 있다가 발굴되었고, 산 넘어 소산마을 김상헌 선생은 1636년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끌려가면서 비분강개하여 ‘가노라 삼각산아’를 외치고 낙향하여 오랑캐를 배척해야 한다는 절개로 청원루를 짓고 살았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로 임진왜란 300년 후에 또 다시 일제식민시대를 겪게 되자 안동열읍향병(安東列邑鄕兵)을 계승한 항일 자주독립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 임청각의 석주 이상룡 선생 등은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썻으며 목숨을 걸고 만주로 미국으로 건너가 조국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국외에서 정치외교적인 독립운동과 무장독립운동을 병행하였고, 국내에서는 의병으로 일어나 목숨을 걸고 만세운동과 저항운동을 끈질기게 이어갔으며 끝내는 자정순국까지 하면서도 일제의 만행에 굴복하지 않았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온 우리나라의 의병정신은 중국, 몽고, 청나라, 일본 등의 침략에도 굳건하게 5천년 역사를 단일민족으로 보전해왔으며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의병은 멸할 수 없다‘는 강력한 국민성이 자라났다. 관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왜적들을 격퇴시킨 의병장의 대부분은 전직관리이거나 덕망이 높은 유학자들로서 그들이 궐기하면 많은 백성들이 모여서 큰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만큼 유교적 인간주의 민본정신이 백성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정의감에 나서는 근본적인 힘이 되었던 것이다.

 

한말의병은 1차로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일어났으며 유생의 본고장인 중남부지방에서 먼저 일어나 북부지역으로 확대되었고, 2차로 1905년 러일전쟁으로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에도 중남부지방에서 유생들이 먼저 일어났다. 1919년 3.1운동까지도 의병전쟁이 계속되었으며 지방의 유생들과 농민들이 주도세력으로 싸웠다. 의병전쟁의 주도층인 유생과 농민은 일제 침략자와 그에 협력한 소수의 집권자들에 대한 최대의 저항자로서 항일민족세력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

 

일제 침략의 최대의 희생자인 농민과 농촌 지식인의 정치적 불만을 집약한 의병전쟁은 일제 36년 동안 전개된 항일민족운동의 역사적인 뿌리인 것이다. 일제와의 어떤 타협주의도 모두 배격한 독립운동가들의 확고부동한 신념과 의지는 의병전쟁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완전 자주독립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유학 이념에 맞는 유교적 이상사회 구현을 꿈꾸며 자주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유생들의 정신이 바로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의 정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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